White witch In Pine forest
210924 농 SAYS
농
No.35 by Nonc
배고픔에 못 이겨 뛰쳐나갔다.
세상의 반대편 소나무 숲에 온지 채 다섯 시간이 지나지 않았는데, 적응을 못 해서도 아니고, 계획한 대로 되지 않아서도 아니고, 두려워서도 아닌, 배고파서라니.
도대체 이 배고픔의 근원은 어디란 말인가. 이것저것 손 가는 대로 챙기다 보니 생각보다 많아진 짐 때문일까. 마녀 옷에 꼭 어울리는 가죽 장화가 눈에 아른거려, 기필코 사서 가겠노라고 없는 시간 쪼개서 서두르느라 그랬나. 내비게이션 말 안 듣고, 관성대로 빠져나간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가 잘못된 선택이었어서 그랬나. 아니야. ㄴ의 마녀 ‘농'이 나머지 열세 명의 마녀를 불러 논 탓에 위가 열네 배로 불어서 그랬나 보다.
이쯤 되면 일곱 개의 대죄 중에 식욕을 담당하는 글러트니가 가장 원초적인 욕구라는 생각이 들었다.
‘농'은 바디퍼커션을 하다가 태어났다. 바디퍼커션의 ‘어리’로부터 워크숍을 위한 닉네임을 지으라는 소리에 쓸데없이 진지하게 고민하다가, 내 이름의 마지막 글자를 180도 휙 돌려버렸다. ‘욱'이란 말에 깃든 뜻은 참 맘에 드는데 (햇살치밀 욱, 빛이니 말이다.) 어렸을 때부터 간혹 터져 나오는 욱 하는 성질을 누그러뜨리느라 오랜 시간 애먹었다. 그 ‘욱'을 반대로 돌렸을 뿐인데, 발음도 부드럽고 왠지 모르게 꼬부라진 프랑스어 같은 ‘농'이란 단어가 돼버렸다. 한국말로 ‘농'도 맘에 든다. 가벼운 농담 따먹기부터 신랄한 풍자와 해학까지, 말의 날카로운 뜻보다 거기에 배어있는 유머가 더 드러나는 표현이다.
작년 이맘때 ‘농'은 아이작, 데미안과 함께 반년 동안 글쓰기를 했었다. 코로나를 핑계 삼아 미술작가로서 모든 활동을 멈추고 사람들의 연락도 잠시 접어두고 동굴로 들어갔다. 아니 한없이 돌아가는 우리들의 뺑뺑이를 돌렸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던 상관없이. ‘농'이란 유머스런 표현이 자연스럽게 나의 필명이 되었다. 우리들은 한주에 한 번 혹은 두 번 로우키와 몽유도원, 북한산의 비봉, 태풍이 지나가는 평창에서 글을 써 내려갔다. 반년동안 써내려간 주제는 서른 세 개. ‘전쟁과 평화', 제로, 아집, 시간, 태풍, 사이렌, 에덴, The, 지문… 아이작과 데미안은 멋진 스파링 파트너였고, 나는 아니 ‘농’은 미술작가로서 작품을 빗어내느라, 최대한 통제했던 목소리를 조금씩 끄집어내기 시작했다. 막힌 둑이 터질 때처럼, 나의 글들, 농의 글들, 그것은 십 년 묵은 채증이 한꺼번에 쏟아져 나오는 토사물과 같았다. 그 속에서 열 살 소년의 꿈 또한 다시 빛을 보기 시작했다. 1996년 문학의 해, 제1회 중랑구 백일장 초등 산문부 장원, 열 살의 나이에 돌아가신 할아버지와 배꽃 피는 과수원을 그리워하며 써 내려갔던 글이 25년이 지난 지금 읽어도 서른 넘은 지금의 나의 글과 어찌 그리 닮았을지. 소설가가 되어야 했을 사람이 미술작가가 되었다. 그것이 작년 말 글쓰기 모임이 거의 끝나갈 때 쯤, 마음속에 새겨진 생각이었다. 그리고 오늘 하얀 마녀를 찾아, 스스로 마녀가 되기 위해 들어온 이곳 소나무 숲에서 ㄴ의 마녀로서 다시금 ‘농'을 부른다. 그의 몽상이 숲의 안식과 더불어, 열네 명의 마녀들에게 새로운 숨결을 불어넣을 것이다.
210925 단테 SAYS
호문쿨루스
No.35.1 by Nonc
단테는 호문쿨루스들의 어머니다. 호문쿨루스란 연금술사들이 만들어낸 인조인간 같은 것으로, 중세를 배경으로 한 판타지 세계관에 종종 등장한다. 호문쿨루스에 대한 한 설명에 따르면, 16세기 스위스에서 인간의 정액을 증류기 속에 넣고 40일간 밀봉해서 부패시키면 인간의 형태를 가진 투명한 생명체가 탄생했다고 한다. 여기에 인간의 혈액을 넣고 40일 동안 말의 체온과 똑같은 온도에서 보존하면 인간 아이가 되었다. 다만 이 아이는 인간의 아이들보다 훨씬 작았고 유리용기 안에서만 살 수 있다고 한다. 르네상스가 갖 지난 시기에 벌써 생명을 창조하는 것에 열을 올렸다니, 인간의 호기심은 나의 예상보다 늘 한 발짝 앞서간다.
<강철의 연금술사>는 일본에서 가장 완성도 높은 소년만화로 손에 꼽는다. 연금술사를 주인공으로 한 짜임새 있는 세계관에 완급조절을 잘 하며 클라이막스까지 이야기를 끌고 가는 능력만으로도 충분히 인상적인데, 소년 만화임에도 불구하고 깊이 있는 철학적 질문까지 잘 버무려 냈다. 2천 년대 초반에 일본 TV에서 방영하여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고, 우리나라에도 잘 알려져 있어 많은 매니아층을 가지고 있다. 재밌는 건 원작 만화책이 완결이 아직 나지 않은 상태에서 TV판 진도가 먼저 나가버렸기 때문에 TV판 종영이 난 후에야, 원작자가 원래 스토리를 다른 방식으로 완결시켰다. 그래서 하가렌 (강철의 연금술사의 일본 명칭을 줄인 말)은 두 개의 결말을 가진 애니메이션이 되었다.
TV판 당시에 투니버스 등에서 방영해 주는 바람에 간간이 한 화 한 화 정도는 봤지만, 전체 이야기를 다 알지는 못했고, 오히려 애니메이션 ost는 즐겨들었다. 그러다가 2년 전 어느날 부산에 있을 당시에 몰아치기로 두 버젼을 모두 봐 버렸다. 원작자의 결말이 조금 더 맘에 들었고 나중에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진 터라 그림체가 아무래도 훨씬 더 세련되었지만, TV판의 옛날 그림체도 그 시절의 추억을 자극하는 묘한 매력이 있었다. 하가렌에는 일곱 대죄의 이름을 딴 호문쿨루스들이 극의 중반부부터 비중 있게 등장한다. 라스, 프라이드, 글러트니, 엔비, 그리드, 러스트, 슬로스… 그러고 보니 어렸을 때, 러스트가 무슨 뜻인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욕망'이라고 나와서, 그건 그리드 - 탐욕이랑 같은 말 아닌가 하고 말았다. 나중에서야, 러스트는 욕망 중에 성욕을 지칭하는 말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일곱 대죄를 보다 더 대중화 한 데에는 <하가렌>보다 비교적 최근에 등장한 <일곱 개의 대죄>라는 애니메이션의 공로가 크다. 이건 아직 시즌이 진행 중이며, 게임화되었을 정도로 인기도 많고 또 적당히 재밌다. 다만 <강철의 연금술사>가 이미 이런 판타지 세계관에서 스케일과 디테일의 정점을 찍어버린 터라, 그 이후에 등장하는 일본 애니메이션은 나름의 변화를 모색하거나, 아예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방식을 취할 뿐이다.
단테는 TV판의 최종 보스로 나온다. 단테는 400년 전 주인공의 아버지와 함께 이상한 실험을 통해 얻게 된 보석으로 몸을 바꿔가며 불로불사의 삶을 살아왔다. 주인공과 첫 대면에서는 정체를 숨긴 채 자상한 할머니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극의 막바지에 이르러서 젊은 여성의 몸으로 옮겨가 본색을 드러냈다. 그녀가 영생을 살기 위한 재물을 찾기 위해 부리는 것들이 바로 호문쿨루스였다. 이처럼 호문쿨루스는 보통 악한 역할로 등장하곤 하는데, 호문쿨루스에 대한 다른 묘사를 시도한 작품도 있다. 최근에 넷플릭스에서 드라마화된 만화 <호문쿨루스>가 바로 그것이다.
어느 날 홈리스인 주인공이 어떤 낯선 만남을 통해, 인간의 몸에 붙어있는 기이한 것들을 보기 시작한다. 그것이 알고 보니 ‘사람들 마음 속에 숨어있는 욕망 혹은 진실’이 형상화된 것이었다. 주인공이 사연 있는 서브 캐릭터 한 사람 한 사람의 서브 스토리와 얽히면서 이야기는 진행된다. 인간의 내면을 볼 수 있는 주인공 만이 풀어낼 수 있는 무언가가 있었고, 주인공과 얽히게 되면서 서브 캐릭터 들의 문제점은 개선되어간다. 여기서 주인공은 신비로운 능력을 가졌지만, 거의 카운셀러에 가까운 역할을 하게 되는데, 재밌는 점은 그렇게 한 사람씩 클리어해 나갈 때마다 그 사람의 호문쿨루스 - 욕망의 형태의 일부가 주인공에게 흘러들어와, 오른팔, 왼 다리, 어깨, 머리칼 등 하나하나씩 바뀌어갔다. 나중에는 다수의 호문쿨루스를 뒤집어쓰고 있어, 자신의 존재 자체에 혼란이 오게 되는데, 만화가가 그려낸 이 그림 묘사를 보고, 고등학교 때 퍽이나 큰 충격을 받았다. 그만큼 인상이 깊었나 보다. 그리고 최근에 드라마화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그때의 그 이미지를 떠올리면서 도대체 그 장면을 어떻게 실사로 묘사했을지가 상당히 궁금했다. 아직 드라마는 보지 않았다.
그 시절 인상적으로 봤던 만화 <호문쿨루스> 덕분에 하가렌에서 다르게 등장하는 호문쿨루스 들에 일종의 연민이 생겨버렸다. 분명히 악역인데 마치 홈리스를 찾아온 사연있는 서브들처럼, 인간의 근원적 욕망이라고 불리는 저 일곱 개의 이름들에도 다 나름의 사연이 있는 것만 같았다. 자음을 따서 마녀 이름을 지을 때에 ㄷ은 고민도 하지 않고 바로 ‘단테'가 떠올랐는데, 나의 ‘단테’는 신곡을 쓴 그 위대한 ‘단테'가 아닌, 호문쿨루스를 부리는 친절한 할머니 ‘단테'였다.
오페라 색상을 좋아해서 구입한 카디건 세트였다. 분명히 이 옷을 입은 인터넷 속 모델 언니는 상당히 젊고 예뻤는데, 내가 입으니 마치 ‘단테'처럼 할머니 같다. 오늘 이 옷을 단테의 복장이라고 미리 정해두지 않았고, 아침 6시에 추울까봐 맥시 원피스 위에 카디건 하나 더 걸치고 나가자고 한 것이 그냥 오늘의 복장, 단테의 옷이 되어 버렸으니 이것도 참 신기한 일이다. 만화 속 단테처럼 호문쿨루스를 부려서, 다른 몸으로 갈아입어야 할 일인가 보다.
211001 타다시 SAYS
바른생활 메리골드
No.35.8 by Nonc
ㅌ의 마녀, 타다시는 장학의 마녀라고도 불린다. 그는 그야말로 화이트 위치 포레스트 마녀 학교의 엘리트 중의 엘리트이며, 공부로 할 수 있는 거라면 뭐든지 잘 했다. 마녀가 아닌, 인간의 성격으로서 보면, 그는 분명히 학생회장 감이다. 성실하고, 침착하다 못해 깐깐하다. 때문에 어떤 일을 주도면밀하게 리드하는 것에 능하다. 또한 그는 뛰어난 협상가여서 마녀 학교의 대외적인 업무를 책임지고 맡고 있다. 그의 다방면에서의 유능함 때문에, 교장 마녀는 그가 졸업하던 해에 그를 학교에 붙잡아 묶어두느라, 꽤나 애를 쓴 모양이다. 비록 사회에 나가서는 그 어떤 마녀들보다 빼어난 수행 능력을 보이지만, 학생 시절에 그는 나름대로의 딜레마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게 똑똑하고, 일처리 잘 하면서 학생회장 감으로 손색이 없는 그인데, 정작 그가 마녀학교를 다니는 7년 동안 학생회장을 도맡아 한 사람은 바로 그와 같은 에메랄드 그린 챔버의 동기인 ㅅ의 마녀 ‘솔'이었다.
솔은 겉보기에는 말랑말랑하고 유해 보이며, 심지어 다른 마녀들의 잡다구리한 일을 시도 때도 없이 돕기 때문에, 그를 볼 때면 언제나 무언가 지쳐있어 보이지만 어느 틈새 시간을 쪼개서 공부를 하거나 하는지, 7년 동안 마녀 학교의 수석은 명석쟁이 ‘타다시'가 아니라, 늘 ‘솔'이었다. 그래서 타다시는 알게모르게 ‘솔'을 의식하곤 했다. 마치 모차르트 옆의 살리에르일까? 타다시는 본인이 그렇게 뛰어남에도 불구하고 도대체 자신이 왜 늘 ‘솔'보다 한 끗이 부족한지 못마땅해 했다. 그러나 그를 오랫동안 옆에서 지켜 본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알고 있다. 그는 너무 깐깐한 나머지 완벽주의에 가깝고, 그때문에 지루한 바른생활 사나이였기 때문이다. 그가 그렇게 지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가진 선천적 거만함에서 나온다. 그가 사람들을 대할 때를 보면, 늘 친절하고 점잖게 굴기 때문에 잘 캐치하지 못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가 혼자 있는 모습을 멀찍이서 지켜본다면 무슨 말인지 바로 이해할 것이다.
어느 평일 오후에 마녀 학교가 2주간의 초가을 방학이라 학교가 텅텅 비었을 때, 학교 뜰 건너편의 나무 마루에서 타다시가 혼자 티 테이블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 모습을 ㅍ의 마녀 파이가 몰래 지켜보게 되었다. 파이 입장에선 몰래라고 할 것도 없었다. 그는 전날 나무마루 뒤쪽 돌더미에서 ㅋ의 마녀 키르케가 먹다가 비리다고 쥐어준 와인 한 병을 받아서 마시고는 그냥 곯아떨어졌나 보다. 그 다음날 오후에 중천의 내리쬐는 햇살에 깨어보니, 바로 너머에서 타다시가 앉아 있었는데 물끄러미 바라보니 그 행동들이 묘하게 이상해서, 계속 지켜보게 되었다고 한다. 놀랍게도 그 주도면밀하기로 소문난 타다시가 티 테이블을 하는 동안은 주변에 파이가 있음에도 전혀 의식을 하지 못했다고 한다. 릴레방심한 탓일까, 아니면 파이가 하도 예측불허하기 때문일까. 어쨌든 파이의 말에 의하면 타다시는 신경증 장애가 있는 것처럼 희한한 행동을 했다고 한다.
타다시가 메리골드를 좋아하기 때문인지 그의 타이즈 색깔도 메리골드색이다. 녹색 머리띠부터, 골드 버튼 셔츠와 서리 나무껍질로 만든 넥타이까지 항상 마녀 학교 교복을 정석으로 갖추어 입지만, 유독 타이즈 색상만 마녀 학교 전통의 푸른 암벽 빛이 아닌, 그가 좋아하는 메리골드를 닮은 짙은 노란색이다. 마녀 학교에서는 타이즈만큼은 마녀 각자의 개성을 뽐내라며 풀어두었기 때문에, 그가 무슨 색깔 타이즈를 입든 크게 상관은 없다. 다만, 그가 예전에 화이트 위치 포레스트 마녀 학교의 상징과도 같은 붉은 뿔 도마뱀의 가죽으로 만든 녹색 리본 머리띠를 착용함에 있어서 분개했을 때를 떠올려 보면 의아하긴 하다. 타다시가 왜 남자 마녀에게도 머리띠 같이 여리여리한 것을 착용하게 하냐고 크게 항의한 적이 있었다. 그가 샌님 같은 겉모습과 달리 멘탈은 상남자인 건지, 일부로 그런 척하는 건지 모르지만, 이것은 남자 마녀들에 대한 큰 차별이라며, 낡은 전통을 바꾸어야 한다고 유독 그 부분에서만 목소리를 높였다. 다른 마녀들은 그가 엄청난 기세로 교장 마녀실 앞에서 일인 시위라도 벌일 줄 알았다고 한다. 하지만 며칠 툴툴거리기만 하면서도 절대로 머리띠를 벗지는 않았다. 바로 옆자리에 앉은 ㄹ의 마녀 르네가 갑갑하다고 쉬는 시간에 점심 도시락 까먹으면서 훌러덩 벗어버리는 것과는 상당히 대조적이었다. 그렇게 자기주장을 하면서도 결국엔 정석과 전통에 얽매여있는 그에게 다른 마녀들은 천상 모범생, 혹은 바른생활 사나이라고 불렀다. 그런 그가 어느 날 갑자기 탁 튀는 노란색 타이즈를 착용하고 왔을 때, 모든 마녀들이 기겁을 했다. 그것은 그가 마녀 학교 3학년 때의 일인데, 주말 바캉스로 메리골드 숲에 놀러 갔다가 왕벌에 크게 쏘이고 드러누운 지 열흘 만에 다시 학교에 나왔을 때의 일이었다.
파이가 지켜본 그날도 타다시의 티 테이블은 메리골드 차를 중심으로 꾸려졌다. 그의 성격을 꼭 빼다 박은 듯 비이커 모양의 투명한 계량기에 말려서 탱글 한 호박색을 띠고 있는 메리골드가 들어있다. 그리고 그 옆에는 그것을 우려낸 메리골드 차가 와인잔에 담긴 채 햇빛을 머금은 영롱한 노란색을 뿌리고 있었다. 번화가에서 유행이 몇 해나 지난 우유 케잌이 테이블 한 편에 놓여있었고, 구운 호밀 식빵과 그것에 곁들여 먹으려는 듯 메이플 시럽이 있다. 또한 ‘사유’와 ‘음악'에 관한 책이 그의 트레이드 마크 같은 검정 금장 도서 위에 놓여있었다. 바스락바스락 소리를 내며 타는 자작나무 양초는 기본이다. 티 테이블은 감청색 천 위에 조심스럽게 마련되어 있었고, 그것이 그의 침착한 성격을 대변하는 것처럼 보였지만, 이내 벌어질 신경질적인 행동들은 차마 알지 못 하는 듯했다.
그가 메리골드만큼이나 좋아하는 것이 바로 포도이다. 와인을 직접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없어 아마 그는 술을 입에 대지는 않는 것 같지만, 포도만큼은 확실히 좋아한다. 한 번에 두 알씩 빠른 속도로 먹어치우는 그의 모습을 보면, 포도의 신 바쿠스도 혀를 내두를 정도다. 예전에 ㄴ의 마녀 농에게 전해 들은 바에 의하면, 타다시가 포도를 거침없이 먹어치우는 이유는, 그것을 좋아한다기보다는 그것을 필요로 하기 때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마치 자동차에 주유를 하듯이 빠르게 돌아가는 그의 뇌 회전을 지속시키기 위해 포도만큼 훌륭한 연료가 없어 보인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그것이 그의 취향이든, 식탐이든, 연료이든 간에 빠른 속도로 한 송이를 먹어치운다. 재밌는 것은 그는 꼭 포도를 먹을 때마다 일본식 증류주를 따르는 작은 소주잔을 가져간다는 것이다. 그리고 포도 껍질을 그 잔에 차곡차곡 넣는 습관이 있는데, 누군가의 추측에 따르면 그것은 아마도 미관성 때문이라고 한다. 여기저기 널려 있는 포도 껍질을 보게 되는 순간, 먹기 싫어질 것 같아서 그렇게 작은 잔에 예쁘게 담아둔다고 한다. 포도에 관한 타다시의 집착은 하나가 더 있다. 그는 다 먹은 포도 심을 햇볕에 바짝 말린 다음에 마치 전리품인 양 보관을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는 아무도 모르는 모양이다. 그래, 무슨 의미 따위가 있겠는가. 하지만 미관성을 그렇게나 따진다는 그가 모은다길래 다시금 포도 심을 바라보니, 새삼 아름답게 보인다.
파이가 전한 얘기 중에 가장 웃긴 부분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의 자작나무 촛불에 촛농이 많이 고였나 보다. 그래서 도중에 불씨가 꺼졌을 때, 어찌할 바를 몰라 하다가 갑자기 나도밤나무 밑으로 가더니 굴러다니는 밤송이를 하나 집어왔다. 아주 조심스럽게 한 송이를 들고 왔지만, 집을 때 이미 여러 손가락 깨나 찔린 모양이다. 자신의 애지중지하는 검정 가죽 금장 도서에 화들짝 내려놓더니, 바로 그 위에 촛농을 쏟기 시작한다. 당장은 그의 표정이 시익 번지며 기쁜 듯 보였다. 그러다가 바로 표정이 일그러져 버렸다. 그도 그럴 것이 뾰족뾰족한 밤송이 위에 그대로 굳어버릴 줄 알았던 촛농이 주르륵 흘러내려 자신의 그렇게도 아끼던 검은 도서 위로 흘러내렸기 때문이다. 어찌할 줄 모르고 밤송이로 그것들을 닦아내려고 했지만, 뾰족한 부분이 먼저 닿게 되니까 잘 될 리가 없었다. 그러는 사이에 촛농은 도서 위에서 서서히 굳어버렸다. 아마도 따가운 밤송이에 촛농을 부어서 만져도 찔리지 않게끔 만들려고 한 모양인데, 생각은 그럴싸했으나 촛농 굳는 시간을 생각 안 하다니 이럴 때 보면 ‘타다시'도 멍청한 구석이 있어, 의외로 마녀답다는 생각을 한다. 이름처럼 정확하고 올바르기만 한 옹고집 기계일 줄 알았는데… (*바를 정을 일본어로 타다시라고 읽으며, 정확함 올바름 정도의 뜻을 담고 있다.) 지루하기만 한 줄 알았던 이런 그의 모습은 놀랍도록 흥미롭다. 이쯤 되면 어렸을 때 그의 엉덩이에 왕침을 놔준 벌에게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그토록 완벽과 올바름만을 고집하는 그에게 흠집을 낸 다음, 그 틈새에 메리골드를 심어주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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